로고 아이디어 스케치, 그림 못 그려도 되는 다섯 단계
스케치는 그림 실력으로 하는 작업이 아닙니다. 후보를 늘렸다 줄이는 작업입니다. 잘 그리려 하면 세 장에서 멈춥니다.
못 그려도 되니까 서른 장을 채우시는 게 낫습니다. 그린 종이마다 날짜를 적어두세요. 나중에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로고 아이디어를 직접 스케치해보라고 하면 대부분 손을 안 댑니다. 그림을 못 그린다는 이유예요.
그래서 디자이너에게 다 맡기고, 나온 시안을 보면서 뭔가 다른데 뭐가 다른지 설명을 못 하게 됩니다.
스케치는 그림 실력과 거의 상관이 없습니다. 무엇을 그릴지 정하는 작업이지 잘 그리는 작업이 아니거든요.
오늘은 그림을 못 그려도 할 수 있는 스케치 순서를 다섯 단계로 정리해 드립니다.
1단계, 단어 스무 개 적기


그림보다 단어가 먼저입니다. 종이에 우리 매장과 관련된 단어를 스무 개 적으세요.
적을 게 없으면 이렇게 나눠서 채우시면 됩니다. 우리가 파는 것에서 다섯 개, 손님이 오는 이유에서 다섯 개, 매장 안에 실제로 있는 물건에서 다섯 개, 우리 동네와 관련해서 다섯 개요.
여기서 중요한 건 흔한 단어를 일부러 적어두는 겁니다. 빵집이면 빵, 밀, 오븐 같은 것들이요. 이 단어들은 나중에 지울 대상인데,
지우려면 일단 적혀 있어야 합니다.
스무 개가 채워지면 그중 우리만 적을 법한 단어에 표시하세요. 보통 서너 개가 나오는데요, 스무 개를 다 채우기 전에는 이게 잘 안 보입니다. 이게 스케치의 재료입니다. 표시할 때 소리 내 읽어보시면 더 잘 골라집니다. 표시한 단어가 하나뿐이어도 진행하는 데는 문제가 없습니다.
2단계, 잘 그리려 하지 않고 많이 그리기


이제 그립니다. 규칙은 하나예요. 한 칸에 삼십 초를 넘기지 않는 겁니다.
A4 한 장을 가로세로로 접어서 서른 칸쯤 만드세요. 한 칸에 하나씩 그립니다. 삼십 초가 지나면 다음 칸으로 넘어갑니다.
완성하려 하지 마시고 형태만 잡으세요.
이렇게 하면 십오 분 만에 서른 개가 나옵니다. 그중 스물다섯 개는 버릴 겁니다. 그래도 괜찮아요.
스케치의 목적은 좋은 걸 그리는 게 아니고 나쁜 걸 빨리 지나가는 겁니다.
잘 그리려고 하면 세 장에서 멈춥니다. 한 장에 십 분씩 쓰고 나면 아까워서 그 안에서 고르게 되거든요. 후보가 세 개인 상태에서 고르는 건 고르는 게 아닙니다. 처음부터 완성도를 낮게 잡아야 손이 계속 움직입니다. 종이도 이면지를 쓰시는 편이 마음이 편합니다.
3단계, 날짜 적어두기


그린 종이 구석에 날짜를 적어두세요. 사소해 보이는데 나중에 쓰임새가 있습니다.
로고를 만들다 보면 비슷한 형태가 다른 데서 나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연히 겹칠 수도 있고, 순서를 다투게 될 수도 있어요.
이때 언제 그렸는지가 남아 있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제도로도 이런 장치가 있습니다. 저작권을 등록하면 등록된 연월일에 창작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다만 창작하고 1년이 지난 뒤에 등록하면 이 추정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등록은 한국저작권위원회에서 받습니다 (출처: 법제처 찾기쉬운 생활법령정보, 저작권 등록).
여기서 읽어야 할 게 있어요. 늦게 등록하면 효과가 줄어든다는 뜻입니다. 로고를 확정하셨으면 미루지 마시고 그 무렵에 처리하시는 편이 낫습니다. 등록 자체가 권리를 만들어주는 것은 아니지만, 다툼이 생겼을 때 입증 부담이 크게 줄어듭니다.
스케치 단계에서는 등록까지 안 하셔도 됩니다. 대신 날짜를 적고 사진을 찍어 보관해두시면 됩니다. 사진에는 촬영 날짜가 함께 기록되니 종이를 잃어버려도 흔적이 남습니다.
4단계, 스케치를 줄여 세 개 남기기
서른 개에서 세 개로 줄입니다. 두 번에 나눠서 줄이시면 편해요.
첫 번째는 기계적으로 지웁니다. 앞 글들에서 말씀드린 기준을 쓰시면 됩니다. 작게 줄이면 안 보일 것, 흑백으로 하면 뭉칠 것, 우리 업종에 이미 흔한 것이요. 이렇게만 해도 절반 넘게 사라집니다. 남는 것이 열 개 안팎이면 적당한 상태입니다.
두 번째는 남은 것들을 놓고 하루를 넘기세요. 그날은 판단하지 마시고 다음 날 아침에 다시 보세요.
전날 밤에 좋아 보이던 게 다음 날 아침에 평범해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루를 못 기다리겠으면 최소 몇 시간이라도 덮어두시면 됩니다.
세 개가 남으면 각각에 한 줄씩 설명을 붙이세요. 이게 무엇을 뜻하는지요. 설명이 안 붙는 건 형태만 예쁜 겁니다.
그건 빼셔도 됩니다. 설명이 한 줄을 넘어가는 것도 마찬가지로 빼시는 편이 낫습니다.
5단계, 디자이너에게 넘기는 방식
마지막입니다. 스케치를 그대로 그려달라고 하지 마세요. 그러면 디자이너의 경험이 안 들어갑니다.
넘기실 때는 세 가지를 같이 주시면 됩니다. 스케치 세 장, 각각의 한 줄 설명, 그리고 로고가 들어갈 자리 목록이요.
여기에 지울 조건을 몇 개 덧붙이시면 더 좋습니다.
말은 이렇게 하시면 됩니다. 이 방향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더 나은 방법이 있으면 알려달라고요. 스케치는 방향을 보여주는 자료지 완성될 형태가 아닙니다. 이 말을 처음에 해두면 서로 편해집니다. 받는 쪽에서도 조건이 적혀 있으면 작업이 헛돌지 않습니다. 시안을 몇 개 받을지, 수정은 몇 번까지인지도 이때 같이 정해두시면 일정이 정리됩니다.
이렇게 넘기면 시안을 받을때 판단도 쉬워집니다. 어떤걸 원했는지 종이에 남아 있으니까 다른 방향으로 나왔을 때 이유를 물어볼 수 있거든요.
넘기기 전에 우리 매장의 말투와 분위기도 함께 적어두시면 시안이 훨씬 가까워집니다.
요비(Yo-B)가 브랜드 목소리를 정리하는 방법을 적어두었습니다.
https://yo-b.com/brand/guide
스케치는 그림 실력이 아니라 후보 개수 싸움입니다. 단어 스무 개를 적고, 삼십 초씩 서른 개를 그리고, 날짜를 적어두고, 두 번에 나눠 세 개로 줄이세요. 그 세 장에 한 줄씩 설명을 붙여 넘기시면 시안의 방향이 크게 달라집니다.
댓글로 남겨주세요. 우리 매장과 관련해서 우리만 적을 법한 단어가 하나 있다면 무엇인가요.



